강다정 (34) / 호텔 컨시어지 매니저
몇 번이나 나는 나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던 걸까.
그만 잠들고 싶었을 일곱 살의 나를 나는 몇 번이나 흔들어 깨운 걸까.
오래된 상처를 긁어내려고 나는 새로 돋은 살까지 다치게 하고 있었구나.
그때, 아빠는 학생운동을 하다 군대에 끌려 온 대학생이었고 엄마는 부대 앞 가게에서 일하던 아가씨였다. 아빠는 엄마를 ‘나의 나타샤’라고 불렀고 시를 읽어주었고 엄마와의 사랑을 말리는 모든 사람과 인연을 끊었다. 그러나 십 년이 지나지 않아 아빠는 엄마를 ‘내 인생을 망친 년’이라고 불렀고 끝없이 술을 마셨고 온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따돌렸다.
엄마는 어린 다정에게 취한 아빠를 피해 방문을 잠그는 것을 가르쳤고 온몸으로 다정과 태정을 지켰다. 엄마는 늘 반짝이는 것을 조심하라고 했다, 그것은 공짜일 리가 없다고. 인어공주에게 세상이 그랬듯, 다리를 주면 혀를 잘라 간다고. 그래서 다정은 왕관 쓴 왕자 따위가 아니라 캄캄한 벽 속에 묻혔을 때 소리 내어 울어줄 검은 고양이를 기다렸다. 먼먼 어느 나라의 공주가 아니라 귤 한 봉지를 사서 들고 들어오는 옆집 아저씨의 딸이 되고 싶었다.
어느 밤 잠결에 엄마의 손에 끌려 그 집을 떠나온 후, 다정과 엄마와 동생은 한동안 허름한 여관에서 살았다. 그 건물은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았기에 엄마는 늘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놓았고 다정은 너무 읽어 다 외워버린 책 대신 주말의 명화를 보며 잠들 수 있었다. 다정은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누가 문을 걷어차리라는 불안감 없이 마음 편히 잘 수 있었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눈치를 보며 그곳을 드나들던 어른들이 여관복도에서 땅따먹기하는 다정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것도 웃겼고 엄마에게는 여관비를 독촉하면서도 다정과 동생에게는 요구르트를 몰래 쥐여 주던 목소리 큰 주인아줌마도 좋았다. 무엇보다 집이 아니어도 나를 받아주는 곳이 있다는 게 정말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다음에 크면 나도 여관주인이 되어야겠어, 꼬마 다정은 생각하곤 했다.
아빠를 닮아 머리가 좋았고 엄마를 닮아 생활력이 강했다. 비싼 학원 한 번 다닌 적 없었지만, 장학금씩이나 받고 대학을 졸업했고 그 여관보다 훨씬 좋은, 특급호텔에 취업했다. 컨시어지팀으로 입사를 해 동기 중 가장 빨리 매니저가 되었고 그런 다정을 눈여겨본 홍보팀에서는 꾸준히 스카우트 제의를 해오고 있다.
발군의 인재인 다정에게 제일 어려운 숙제는 연애다. 엄마를 닮은 걸까? 다정은 아빠를 닮은, 그러니까 쓰레기 같은 남자들만 줄줄이 만나왔다. 이유가 뭘까? 내 몸에 쓰레기를 끌어당기는 자성이라도 흐르는 걸까? 쓰레기여 여기로 오라, 내 이마에 적혀있는데 내 눈에만 안 보이는 걸까?
새 출발을 하기 위해 구구빌딩으로 이사를 결심했지만 그 결심을 비웃듯 이사 직전 그 건물에선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귀신이 나온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으나 다정은 예정대로 이사를 했다. 언제나처럼 피해자에게 이입하는 다정이었기에, 무섭기보다는 딱하다 생각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귀신이 됐을까, 물론 고개 숙여 머리를 감다가 눈이 마주치면 좀 무섭긴 하겠지만, 신나는 트로트 한 곡 짱짱하게 틀어놓으면 귀신도 신나게 스텝을 밟느라 거꾸로 나를 쳐다보고 있지는 않을 거야.